(11편) 빛의 도시 Le Ville-Lumuire, 빠리.
빛의 도시죠, 빠리!
멋과 美의 도시, 그리고 세계 패션의 심장...
빠리의 매력은 모든면에서 기대를 능가합니다. 멋과 격조... 문화, 예술, 음식 그리고 건축물까지, 신세계 도시들과 달리 급조된 느낌이라곤 전혀 들지 않습니다.
지극히 인상적이지요. 하등의 겉치례가 필요없는, 요컨대 유럽 최고의 작품성이자 오랜 시간이 자아낸 빠리 만의 (자연스러운) 美, 아닐까요...
완전 멋진 일이었습니다. 건축물에서, 도시 구석구석에서, 적어도 수 백 년은 이상 역사의 멋과 향이 이끼처럼 배어있음을 발견하는 일!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은…
영화 속의 빠리. 그 심장을, 그 길들을 따라 걸어볼 것이니까.
윗 사진에서 빠리 시내의 중심 Avenue de l'Opera 를 만납니다.
무대 장식을 보는 듯 하지요(?). 건물의 디테일과 멋 말입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유명한 빠리의 오페라 하우스구요.
Edouard VII 호텔은 그러니까 거리상 빠리 오페라 하우스와 루브르 박물관의 중간 정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빠리만의 화려함과 단아함의 어느 중간을 어색치 않게 표현하는 호텔인데요. 뭐랄까.., 부틱 호텔의 엘레강스와 운치(?)가 있습니다. 호텔 직원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상냥함과 친절함, 친근감에서 역시 빠리를 독일 뮌헨을 제외한 유럽 최고로 느껴 봤습니다만...
빠리의 서북쪽 번화가인데요. 멋 없는 인증샷일망정 개선문 도장은 찍어야겠길레말이죠. 개선문 혹은 '아크 토 트리옹 (Arc de Triomphe) 이라 하지요.
기억으론 우리를 실은 차가 바로 유명한 샹젤리제 (Av des Champs-Elysees 죠) 쇼핑 가를 지나고 있는데요. 바로 여기, 도로 10개가 (개선문) 써클에 동시 진입한다는 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교통 정리, 장난 아닌셈이죠.
아무튼 빠리, 가는 곳마다 빠리만의 고유 정취가 물씬 풍깁니다.
오래된 것을 소중히 지키는 전통 또한 남다른 도시인데요. 중요한 건 반드시 그럴 수 있도록 애당초 긴 안목을 갖고 창작해낸 아름다움이자 견고함에 바탕하는.., 그런 도시요, 문화 배경이 아닐까 하는 거죠. 감상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으나, 인간 관계 역시 그렇지 않습니까(?) 급조된 것보다, 오랜 세월 손 때 묻은 관계가 더 아름다운... 그런 거.
다운타운 빠리에서 근대화 된 건물은 많이 볼 수 없습니다. (아니 존재하는 것들마저) 도처에 편재하는 고틱과 로만,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의 건축물 그림자에 가려져 접수되지 않는 식입니다만... 아무튼 멋과 디자인, 예술의 궁극은 반드시 유럽 장인들 손때가 묻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군소리 없이 수긍하게 되는 대목이죠.
(딱 한 번 더 되풀이합니다) 오래 전 어디선가 '예술과 美의 정확한 의도성'이란 제목의 글을 읽은 적 있는데요.
당시 그 정확한 의미가 다소 애매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로써 그 문구, 제겐 빠리에서 결론되는 듯 했구요. 요컨대 미학적 의도와 장기적인 안목을 지닌 계획이 장시간 (수 백년)에 걸쳐 무르익는 모습. 네, 바로 그것을 지향한 '창작의 의도성'을 얘기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말입니다.
사실 뉴욕이나 서울 같은 도시들의 '비의도적'인 (이를테면 인간의 정확한 의도나 계획 없이 제 멋대로 태어나 후세사람들에 의해 덧붙쳐지고, 땜질 되고... 억지 조화가 만들어지고, 겉치레 화장으로 다듬어진) 멋과는 전혀 다른 뿌리를 가지고있는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요(?)
몽마르뜨 언덕
그러니까 (빠리 방문시 누구든 얼굴 도장을 찍어야 하는 곳), 몽마르뜨 언덕이죠. 바로 윗 골목 길이 케이블 카로 연결해 줍니다. 그렇게 고지의 정상에 닿는 것인데요...
유명한 사크레 크르 'Basilica d' Sacre Coeur' 대성당이 몽마르뜨 고지 높은 곳에서 (이름 그대로) 순교자들의 영혼을 기립니다.
어찌보면 그러나 몽마르뜨야말로 빠리가 제게 안겨준 유일한 실망이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부富의 축적이나 명예 따위가 아닌 순수한 예술에 집념하는 사람들의 집합소. 자본주의 사회 속에 아직 살아 꿈틀대는 청빈 개념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오염되지 않은 예술말이죠.
모름지기 그런 무명 작가들과 순수 작품들의 아지트를 기대했던 우리들을 반기는 건 도처에 자리잡은 잡화상들이요, 천박한 재주와 쓸대없는 물건들로 끊질기게 관광객을 쫒는 잡상들이었던 것입니다.
아쉬움과 씁쓸한 마음에 언덕을 내려옵니다만...
그러나 예쁜 까페와 식당들이 줄지어 있어, 바쁜 여행객들의 발을 멈추게 하는 건 사실입니다.
St Germain des Pres... 쌩 제르망 드쁘레
19세기와 20세기 유럽 사상과 철학, 또 문학이 살아 숨쉬던 바로 그 동네. 소르본느, 빠리 시립 도서관 및 여러 대학들을 주위로 수 많은 까페들이 현대 사상과 철학을 잉태시키고 영양시킨 보금자리이기도 했던...
아무튼 바야흐로 제 눈앞에, 제 발 밑에 느낄 수 있었던 겁니다. 쌩 제르망, 그러니까 호텔에서 남쪽으로 몇 블럭, 루브르 박물관을 거처 Pont Royal 다리를 통해 쎄느강을 건너 만납니다. 서울로 치자면 강남 (?)정도 될까 모르겠는데요...
사실 이번 빠리 여행, 저의 궁국적인 목적은 바로 이 곳 쌩 제르망의 명소 '두 마고' (Les Deux Magots) 까페를 찾는 것이었는데요. 그 사이드 워크 테이블에 앉아 반드시 만나야했던 엑스프레소 한 잔... 그러니까 학창 시절 때부터.., 30여년. 제 속에 오래 뭉클거리던 꿈의 실현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무튼, 두 마고를 찾는 데는 그리 힘들지 않았구요. 쎄느 강을 끼고 동남쪽 방향으로 약 일 마일 걷다보면 고물 책방들, Antique 숍들, 식당과 까페들이 밀집 돼있는 바로 그 동네를 만납니다. 대략 그 중심 부 정도, 낡은 교회를 마주하고 있는 Deux Magots 는, 역시 사이드 워크 테이블을 여럿 포함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분위기의 스트릿 까페였습니다. 그러니까 다이닝 홀 끝에, '두 마고' (이를테면 두 명 중국인? 마술사)의 동상이 나란히 앉아있는 바로 그곳.
이쯤돼선 감 잡으신 분들 계시죠(?!)
네. 바로 이곳, 싸르트르와 보브아르, 까뮤 같은 지성들이 의견을 교환하며 뜨거운 논쟁을 벌리던.., 모름지기 근데 서양 철학사를 뒤바꾼 사색과 집필 작업들이 이행되던 공간.
아니 문학의 기틀뿐 아닙니다. 포스트 임프레셔니즘 예술의 대가 피카소 아저씨와 도라마르라는 여인의 역사적인 사랑이 싹텃다는 장소 아니겠습니까. 그뿐 아니지요. 더 이전 1700년 말기(?)로 거슬러 올라가 나폴레옹이 만찬을 즐기고 돈이 없어 자신의 모자를 담보로 남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는, 네.., 틀림없는 바로 그 '두 마고'인 것입니다.
아!, 그리고 안 쪽으로 아직 헤밍웨이가 앉아 커피를 마시며 집필 하던 테이블이 잘 보존 돼있기도 하구요. 웨이터가 일러준 대로라면, 당시 헤밍웨이 테이블을 서브하던 분이 아직 살아계신다고 하네요. 특별 초대로 만나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실재는 본질을 능가한다'
'상황이 존재성을 유도한다' 등의 주체성,
그리고 결국 無로 치닫는 존재. 인간은 모름지기 자유라는 저주에 의해 유도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바로 그 싸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이 잉태되고, 태어난 바로 그 장소가 아니겠습니까. (윗사진: 아직 두 마고가 앉아있는 길 목에는 싸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들 사상과 철학을, 삶과 가르침을 기리는 팻말이 서있습니다)
아무튼, 바로 그 곳, 그 자리에서 고대했던 대로 엑스프레소 한 잔을 만난 것은 제게 더 없는 영광이었음을 밝혀둡니다. 흥분 상태에서 두 마고 엑스프레소의 맛을 제대로 음미한다는 건 무리였지요만... 참고로 두 마고에서의 엑스프레소를 곁드린 샐러드 런치는 일인 당 약 18유로 (당시 환율로 대충 25달러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습니다. 과연 실재는 본질을 능가하는 게 아닐까요(?)
살다보면 상황이 우리 모두의 존재성을 유도하고 마니까... 실존주의 철학은 그래서 '나는 (I am) 누구다'를 부인하고 말지요. 누구에게도 어제와 오늘은 동일할 수 없으니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변할 수 밖엔 없으니- 말입니다. 차라리 '나는 생성한다 (I am becoming)' 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얘기겠지요. (하하 잠깐 미니 철학 시간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 모든 보물들을 만나기 전 (옛날 루브르 궁이었다고 하지요) 건축의 아름다움과 엄청난 규모에 입이 벌어집니다. 근대에 건설된 정문앞 광장의 유리 피라미드는 한때 어울리지 않다는 평으로 문제가 많았다지요. 현재는 그러나 루브르를 대표하는 조형물이 되어 전 세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있다는 얘깁니다.
아! 맞습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읽어보신분들. 바로 그 스토리의 시작이 되는 무대... 바로 여기, 그리고 그 피라미드 입니다.
대단하죠! 조각, 목수 작업.., 건축의 모든 디테일 말입니다. 미세한 것에까지 장인의 정신과 땀이 깃들지 않은 데가 없는 듯 보입니다. 모름지기 박물관 자체가 소장하고있는 예술 작품들 만큼이나 값지고 훌륭해 보이지 않습니까.
루브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지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는 박물관으로도 유명할 겁니다. 소장품의 수와 질면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과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산맥을 이룬다고 하지요. 되풀이 합니다만 옛날 루브르 궁을 개조한 박물관 건물이 유네스코의 세계 유산으로 지정 돼 있다고 합니다.
소장품들을 일일이 나열 소개해드리기엔 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촌스러울 망정) 붐비는 인파를 뚫고 증인한 원본 모나리자의 미소, 꼭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 조형물. 그 것의 뒤집어 놓은 연속체인 셈이죠 (내부로). 사진에서 제 모델이 하는 짓은 절대 엽기적인 게 아니고요.., 이를테면 피라미드의 기氣를 받는 과정 정도로 이해하시면... (아래 사진은 미라미드를 통해 보이는 밖의 전경입니다)
그리고, 베르사이 궁...
한국에선 베르사이유 라 하지요. 흥분과 뛰는 가슴을 꾸욱 누르며, 빠리 변두리에서 아주 가까운 (약 30 마일 정도?) 거리의 베르사이를 찾아봅니다.
Louis 13세가 자신의 수렵용 별장으로 이용하던 건물을, (그러니까 1624 년 즈음하여) 그의 아들 Louis 14세가 모름지기 프랑스뿐 아닌 유럽 전체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궁전으로 완성시키며, 1682년 프랑스의 수도를 천도, 모든 왕실의 실무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역사는 전합니다.
아무튼 베르사이, 기대했던 바 대로 파킹장서부터 방문객들이 붐비는데요. 정문을 통과하며 그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게 됩니다. 사실 런던의 Windsor나 버킹햄 궁 정도는 비교 조차 힘들 정도의 사치와 웅장함에 방문객들의 환성이 끊기질 않는데요.
사치와 화려함이 불러온 부패 정치와 온갓 비리, 국민들의 피와 땀... 급기야 프랑스 혁명이라는 피바람이 몰아친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던 대목 이었습니다.
되풀이 합니다. 인간의 욕심, 열정, 사치와 부패, 그리고 그것들의 궁극이 결과하는 작품이 이다지 엄청날 수있음을 깨닭게 만드는 광경이자 살아있는 증명이었습니다.
아무튼, Louis 16세와 악명 높았던 그의 왕비 마리-앙투아넷(Mary Antoinette)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간 시기 (그러니까 혁명 직후 1789년, 나폴레옹이 다시 수도를 빠리로 옮길 때) 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에피소드들의 무대가 됐던 바로 그 궁전이 베르사이인 것이지요.
들어 보셨죠(?) ...그 유명한 '거울 연회장 (Hall of Mirrors)'. 거울과 크리스탈로 치장된 볼 룸이지요.
베르사이 궁의 뒷 정원입니다. 수 백 에이커에 달한다는 규모지요.
일년 내내 엄청 많은 방문객을 받는다는 만큼..,
그 유지를 위한 정원사들 숫자만해도 중-소 기업의 규모를 능가한다고 하네요. 엄청난 관리/유지비가 소비되는 듯 합니다.
베르사이 궁 하면, 야간 조명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시간문제로 조명에 빛나는 그 더욱 화려한 모습, 못보고 지나갑니다.
에펠 탑
1889년 빠리 국제 박람회의 입구로 완공된 것이라 합니다. 324미터, 그러니까 약 81층 건물 높이와 같은 철제 타워지요. 빠리의 가장 높은 건축물인 것은 물론 1930년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 될 때까지, 그러니까 41년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의 왕좌를 유지해 왔다는 사실은 빠리씨엥들간의 자랑이구요.
그리고 그 위 전망대에서 내려보이는 광경...
식당 '에펠 58'은 전망대 위 (아마도 58층 높이??)에 위치합니다. 사방에 펼쳐지는 장관뿐 아닌, 탁월한 요리와 좋은 와인이 제공됩니다. 에펠 탑 추억에 빼 놓을 수 없는 '꺼리' 한 페이지를 장식해 드릴 것입니다. 아직 방문 기회가 없으셨던 분들께 숙제로 드립니다. 반드시 방문하실 것을... 사전 예약은 물론입니다.
쎄느 강의 흐름은 항상 부드럽습니다. 한강의 3-4분지일 정도 폭으로 빠리를 가르며 흐르는 쎄느 강은 역시 황혼이 깃들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셈이구요.
(불행히도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어느 저녁, 쎄느 강변의 유람선 크루징에서 다시금 느낍니다.
로망, 사랑, 그리고 샹숑의 종주국은 왜 프랑스여야 하는지.., 그들의 낭만과 자유, 바탕과 색깔의 부드러움을 충분히 전달 받거든요. (멀리 노틀담 사원이 보입니다)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La Vie en Rose, 빠리의 하늘 밑, 등에 걸맞게 강변 도처에, 저녁 노을을 맞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 춤을 추는 사람들.., 그리고 음악을 과시하는 예술인들의 뒤늦은 하루가 시작됩니다.
유람선에서도 흘러나옵니다. La Vie en Rose, 빠리의 하늘 밑 등 오래된 샹숑들. ...그리고 걸맞게 강변 도처에, 저녁 노을을 맞으며 사랑을 주고받는 연인들, 춤을 추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음악과 낭만을 즐기는 빠리씨엥들의 뒤늦은 하루가 시작되는 식입니다.
암튼 발 둘 달린 짐승이라면 누구나.., 사랑을 나눕니다. 이눔들까지도..
빠리씨엥, 그들에 대해 몇 마디 집고 넘어갑니다.
(얼마 전 런던 시민들로부터 역시 느꼈듯이...) 그들이 준 인상은 우리의 선입견을 마구 흩뜨러 놓았다는 것인데요. 사실 방문 전 런던이나 빠리, 냉정한 그 시민들의 우월감이 이방인들에게 심히 비호의적이며 쌀쌀 맞기까지 하다는... 아니, 심지어는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이 도처에 편재 한다는 말까지, 귀 따갑게 들었거든요. 여러분들도 경험하셨죠(?) 빠리에선 불어 사용 아니면 아무것도 가능치 않더라는 발언 같은 거...
그러나 모두 과장된, 오해의 선입견일 뿐이었습니다. 정작 제가 느끼고 체험한 런던과 빠리 사람들은 지극히 친절하고, 상냥했다는 사실이지요. 빠리에서 만난 이들 대부분이 약간의 영어 만큼은 즐겁게 구사하는 사람들이었구요. 글로벌 경제 시대의 효과일까요. (혹은 자주 있는 K-Pop 공연과 한류 흐름 탓이었을까요?) 한국인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만큼, 친절하고 호의적이었습니다.
제 자신의 바보같은 (방문 전) 선입견과 무지無知에 적잖은 부끄러움을 경험하며 결론드립니다.
중요한 건.., 맞습니다. 세상 어디나 장미는 장미고, 제비꽃은 제비꽃이며, 사람은 사람일뿐이지요! 모든 것이 방문객 하기 나름이며, 하는대로 받는 식 아닐까요. 그들과 그들의 문화를 존종하고 사랑하면, 똑같은 자세가 돌아오겠죠... 방문객 모두의 부정적 선입견, 두려움이나 거부반응에 대한 철저한 교정(!), 그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무튼 물론입니다. ...낭만은 스피드와 색깔 없이 이루어지지 않겠지요(?) 하물며 빠리에서야...
나이에 상관 없이 딸기 빛 두카티(!), 요런 눔과의 사랑도 가능합니다. 여긴 빠리니까...
참, 제가 숙박했던 호텔은 절대 아닙니다.
근데, 재미있죠. 빠리인 들은 왜 경찰서 (구치소?)를 Hotel이라 부를까요?
여행은 낯선 것들을 찾아 나서는 계기입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낯선 스토리, 낯선 환경...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여행이야말로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자 기회가 아닐까요.
역사 (인간의 역사, 방문지의 역사) 그 자체를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 또 그 것에 즈음하여 그동안 배우고 터득한 우리 자신의 이념과 사고思考를 역시 돌아 볼 시간을 얻는 찬스... 멋있죠(?!)
바꿔 말해본다면 여행이야말로 여행자 자신의 과거 역시 반추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보면, 결국 여행은 낯선 것과 낯설지만도 않은 것들을 동시에 찾아보는 기회가 된다는 재미있는 결론인데요. (...동의 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금번 빠리 방문은 제게 지나간 시대, 사람들, 역사.., 그리고 동시에 흘러간 저만의 시간들 (제 젊음과 학창 시절이죠)과의 해후를 가능케 해준 것입니다. 되풀이 합니다. 낯설고 전혀 낯설지 않은 체험을 동시에 선사받는 고마움. 쌩 제르망, 책에서만 만나고 그려오던 곳. ...삶에 대한 저의 믿음과 신념의 고향이기도 한 바로 그곳을 만나는 건 가슴 벅 찬 체험이자 형용키 힘든 근사함이 아닐 수 없었지요.
...프랑스 다음 방문을 조바심내며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