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이화원과 천단공원, 베이징.
이화원 Summer Palace
유명한 이화원입니다, 바로 이곳이...
약 720 에이커의 공원 내에 조성된 종각과 탑, 정자, 누각 그리고 주거용 궁의 복합 공간인데요, 이름하여 청의 Summer Palace로 유명하지요. 1750년, 청나라 건륭제가 이화원을 지어 황실의 여름 별궁으로 쓰게 하였다는 것인데, 바로 보이는 물, 거대한 쿠밍 호수 역시 인공 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자금성에서 몇 마일 떨어져 위치한 바로 이 이화원에서 유명한 서태후가 1889년부터 1908년 죽을 때까지 거주했던 것으로 역사는 말합니다.
이화원이 공원으로 바뀌며, 일반인들의 방문이 가능해진 것은 1924 이라고 가이드는 전합니다.
서태후가 청국의 해군 군자금까지 빼다 이화원 확장에 썼다는 설이 뒷받침 하듯, 그 규모와 아름다움이 방문객들을 놀라게 하는데요.
중국의 모든 것이 그렇듯 이화원역시 굉장한 규모에 실로 튀는 건축물들의 집합 장소이기도 합니다. 3층짜리 극장이 달렸다는 이락전頤樂壂(위의 사진)은 물론, 서태후의 침전이었던 낙수당樂壽當, 등 컬러풀하고 환상적인 건축물들이 즐비합니다.
황제의 상징인 용과 황후 상징의 봉황이 가는 곳마다 동일하게 조각돼있는 것이 흥미롭지요. 모름지기 당시 서태후의 권력을 반영한 것이라고 가이드는 강조합니다.
유난히 눈을 끄는 건축이 물위에 떠있는 바로 석방石舫일 것입니다. 사실 석방은 나무로 만든 호숫가의 누각이라네요. 대리석으로 만든 것처럼 채색하였다는 것인데, 언제 제조된 건축물인지 몰라도, 이미 서양문화가 흘러들어오던 1800년 말기 정도가 아닐까요. 고대 유럽과 중동 스타일 기둥과 아-치의 건축 모양 혼합이 이채롭기도 하지만, 더욱 신기한 건 양옆 모조 바퀴의 모양새야말로 마치 19세기 미시시피의 외륜선과도 흡사하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어찌 보든 이화원에는 어울리지 않는 그 뻘쯤스러운 건축, 그 근원의 디테일은 유감스럽게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730 미터에 이르는 장량은 기네스 북에 기록된 세상에서 가장 긴 (지붕 덮인) 산책로랍니다. 쿠밍 호수 변을 따라 궁을 둘러싸고 있는데, 중국 고전의 장면들 1만4천 여 점을 회화로 정교히 장식됐다는 점에 방문객들을 놀라고 맙니다.
천단 공원 Temple of Sky
자금성을 중심으로 10여분 북쪽에 위치한 이화원과 그 반대방향, 즉 (자금성에서) 남쪽으로 비슷한 거리를 가면 천단 공원을 만납니다.
천단공원 역시 면적 700에이커 규모의 광대한 공원이구요. 원래 천단 공원은 제천 의식, 이를테면 오곡풍양을 위한 풍년제나 비를 부르는 기우제 등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1420년 명 황제 영락제가 건설 한 신사(temple)와 제단들의 모임이었던 셈인데요, 이젠 역시 기념관/박물관으로, 또 공원으로 관광객에 오픈돼있는 셈입니다.
천단은 내단과 외단 을 回 자의 형태로 나누어 밖(외단)은 남쪽을 향해 사각형으로 땅을 상징했으며, 안쪽(내단)은 북쪽에 원형으로 하늘을 의미하게 설계됐다고 합니다.
상징적인 총 3층 높이의 원형 목조 건축물이 내단 북쪽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른바 ‘유리기와’라 불리는 그 건물의 푸른 지붕은 즉, 하늘을 상징한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자금성을 중심으로 남쪽에 天단, 북쪽에 地단, 동쪽에 日단 서쪽에 月단이 있어 각각, 하늘과 땅, 태양과 달에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것은 말하나 마나인데, 그 중 천단이야말로 황실 최대의 제단이었다는 것은 그 웅장한 규모로 알 수 있습니다.
베이징 많은 건축물들이 그랬듯이, 천단 공원의 여러 신사와 건축들이 번개/화재로 파손됐으나, 1896년 모두 재건 됐다고 가이드는 말합니다.
숙고해 보건대, 당시 명나라 때부터, 청에 이르기까지 정치/사회적인 힘은 불교, 유교와 도교의 화합으로 이루어진 종교문화에서 비롯됐으며, 분열이 아닌 바로 그 화합이야말로 많은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불교와 유교 대립의 파벌과 (끊임없는) 정치적 투쟁이 결론한 조선의 불안과 분열이 그 모든 것의 종주국인 중국엔 없었다는 아이러니는 놀랍기도, 슬퍼지기도 하는 대목이었을까요(?!)